Phirr
55%
태양은 가득히
[4.5] 콘클라베
2025.03.11

 

콘클라베
Conclave
2024

 

이런 영화를 볼 때 시놉시스나 정보를 잘 찾아보고 가지 않는다. 콘클라베도 그렇다. 콘클라베가 교황 사후 새로 뽑는 회의 같은 걸 뜻하는 단어라는 것과 장르 표기가 미스터리/스릴러물이라고 되어있단 것만 알았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 전에, 그리고 초반부에 내가 추측한 것은... '와! 추기경들이 저기 갇혀서 교황 확정될 때까지 못 나온다고? 근데 추기경들끼리 유력후보니 진보니 보수니 파벌이 있어? 그럼 밀실살인인가보다... 유력 후보 중 하나인 추기경 한 명 죽고 가장 성스러울 공간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가장 성스러울 사람들이 용의자가 되는 내용인가 보다 와 정말 배덕하고 언홀리해!'

 

... 어쨌든, 기독교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이고 따로 알아볼 필요성도 딱히 살면서 못 느꼈다. 그만큼 관심이 없다. 애초에 신을 믿지 않는다. 불교는 찾아보고 공부해본적은 있지만(애초에 불교는 딱히 전능신을 믿는 종교가 아니므로). 서브컬처에서 기독교 레퍼런스를 차용해온 것들도 '그런 설정이구나' 하고 넘어가는 편이다. 왜냐면 굳이 성경을 몰라도 오타쿠들 사이에서 재생산되는 부분은 특정이 되어 있고 그 정도는 감으로 어쨌든 알기 때문에. 아무튼 살면서 처음으로, 성경을 읽고 싶어지는, 아니 그를 넘어 기독교도 모태신앙인 지인들이 '부럽다'고 느껴지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콘클라베를 보기 전에 나름대로 예습해간다고(ㅋ) 넷플릭스에서 두 교황을 보고 갔다. 프란치스코가 진보적인 성향의 교황이라던가 바티칸 시국의 시스티나 성당에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있다든가 하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나는. 그리고 콘클라베의 시놉시스에 대해서도 전혀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한 채로 기독교 모태신앙 지인 하나만 덜렁 옆구리에 끼고 영화관을 갔었는데… 정말, 만족스러웠다. 계속 말하지만 기독교에 대해서는 진짜 아무것도 몰라서 성경이나 인물 모티브에 대해서는 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하 영화의 치명적 스포일러를 함유>




 




콘클라베가 시작됨을 알리며 단장인 로렌스는 개회식에서 연설한다. 그는 대본대로 글을 읽다가 이를 제쳐두고 내용을 바꾼다. "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믿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심하는 교황을 보내주시기를 바랍니다. 죄를 짓고 용서를 구하는 교황을 보내주시기를 바랍니다." 추기경들은 당혹으로 물들지만 로렌스는 매우 평온한 감정을 느낀다(이 지점은 해석이 아니라 공개된 대본에 디렉팅된 내용이다). 마치 계시를 받은 것처럼. 그리고 마지막 번째 투표, 무너진 천장에서부터 새소리가 들리고, 추기경들은 모두 천장을 바라보다가 투표용지에 이름을 적는다. 마치 계시를 받은 것처럼.

로렌스의 말마따나 확신이라는 것은 때로는 무서운 것이다. 나는 모든 갈등은 자신의 선택이 옳다는 '확신'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주로 특정(그러니까, 콘클라베에서 저격하는 해당)종교의 이름으로 주로 행해지는 탄압과 혐오도 그렇다. 동성애자는 지옥에 떨어져 마땅하다는 확신 같은 것이고, 여성은 남성을 보필하는 것이 옳다는 확신 같은 것. 확신은 간편하고 의심은 어렵다. 남의 판단에 맡기는 것은 쉽고 자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 의심하는 것은 살아가며 끊임없이 멈추지 않고 행해야 하는 일이다. 흔히 비판적 사고라고도 하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말처럼. 예수가 인간이었기에 마지막에 신의 선택을 의심했듯이.

철학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데카르트의 '신의 존재에 대한 논증'은 꽤 흥미롭다(물론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반박한다면 아마 반박하는 사람 주장이 맞을 것임). 데카르트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면서 우리가 '의심한다' 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의심이란 불완전성에 대한 불확실이고 유한함에 대한 불안감인데, 우리가 의심한다는 것은 이게 불완전하고 유한하단 사실을 속으로 깨닫고 있기 때문이고, 그 불완전함을 알고 있는 이유는 유한한 창조물인 우리는 무한하고 완전한 존재인 신이라는 존재가 빚어낸 것이므로 그에 대한 무의식적인 경외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고(적어도 나는 그렇게 이해한다). 무교이며 무신론자이며 설령 신이 정말 있다고 해도 그게 내가 신을 절대적으로 여기고 경외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평생 생각하는 나지만 데카르트의 이 주장은 정말 흥미롭다. 신의 존재는 우리가 의심하기 때문에 증명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의심하는 교황을 원한다. 확신하는 교회는 위험한 것이다.

 

 


 나는 사실 베니테즈의 스위스 병원 방문기록이 있다는 걸로 의혹이 제기됐을 때 안락사를 도와주거나 시도하려고 한 건 줄 알았다. 기독교에서 자살은 죄니까 안락사(또는 그것을 도운 것) 역시 죄이니 그 때문에 베니테즈에게 후보자의 자격이 없다고 문제를 제기하려니 싶었다. 그런데 '복강경 자궁 절제술' 여기서 진짜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수술을 받지 않은 이유로 '주님이 빚은 몸에 인위적으로 손을 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겨서' 라고 말한 것까지 완벽한 화룡정점이다.지인의 말마따나 그들이 트랜스젠더들의 트랜지션에 대해 혐오발언을 하는 근거는 '주님이 주신 성별에 반하고 주님이 빚으신 몸을 바꾸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가 아닌가. 사실 그러면서 간성의 교정수술은 태연하게 이루어지며 심지어는 성형수술같은, 건강과 관련된 것도 아닌 단순 미용 목적의 수술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가 교황명으로 이노센티우스(인노첸시오)를 택한 것 역시 그렇다. 성추문이 있거나 동성애 혐오를 하는 등의 인격적 결함 이외에도, 백인 남성인 벨리니는 '우리는 저 보수파와 다르다는 걸 어필해야 한다'며 여성인권 문제를 화두로 끌고 온다.그리고 이 탁상공론에 당사자성이란 없다. 여성인권 문제를 입에 올리는 벨리니조차 여성 수녀들에게 굳이 감사를 올리지 않는다. 성당의 천장이 무너졌을 때 성전을 논하던 추기경은 전쟁을 겪어본 적도, 이슬람을 마주해본 적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innocent와 어원을 같이 하는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그런 것일 테다. 무의미한 탁상공론과 안전한 구경꾼의 위치에서 벗어나 직접 가장 낮은 곳에 임하여 체험하는, 위선에서 벗어난 결백한 자.

 

 

+

여기서 기독교 알못이 주워들은 지식 두 개.

 

1) 로렌스 추기경의 풀네임은 '토머스 로렌스'이고, 성경에는 도마(토머스)라는 인물이 나온다. 예수가 부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심하며 기어코 예수의 옆구리 성흔에 손가락을 넣어본 사람의 이름이라더라. 아 기독교도인들 또 지들만 아는 모티브 집어넣고 신났네.

 

2) 인노첸시오는 가톨릭 교황 중 중세 교황권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교황은 태양이며 황제는 달' 이라는 말을 남긴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이름과 같다. 새로이 교황이 된 그가 인노첸시오를 교황명으로 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복잡한 시대에 신앙을 잃는 이들에게 돌아오라고, 내가 가톨릭을 더욱 의미있고 위대하게 만들겠노라 하는 야망이었을까? (이 사실을 알게 된 나: 그러니까 Make Catholic Great Again을 외치는 논바퀴어인터섹스좌파트럼프를 뽑았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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