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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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가득히
[3.5] Tar 타르
2023.02.26

 

TÁR
TAR 타르

케이트 블란쳇이 아니다... 그냥 리디아 타르 그 자체다. 160분동안 펼쳐지는 연기차력쇼.
성별만 남자로 바꾸면 너무 익숙한 이야기 아닌가?? 이런 미러링 영화를 원했어... 별 같잖은 미러링 탈을 쓴 노노체 말고...
엔딩이 말 많던데 오히려 그 추악함이 완벽하다...
라고 생각.

음악에 조예 없어서 좀 힘들었고 피곤했고 재미없었음
그런데 후반부... 추악함이 드러나는 순간부터 급격히 재밌어짐.
 


혐오적 행보와 미러링 사이.

 
 우리는 종종, 주인공은 좋은 녀석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렇기에 주인공의 파멸을 안타까워하곤 한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거의 모든 작품이 주인공의 시선과 주인공이 가진 가치관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 사이에서 '아니다' 라고 반발하기란, 굉장히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창작자들은 이러한 우리의 착각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TAR, 타르. 이 영화가 어떻게 시작하는가?  관객이 꽉 들이찬 곳에서 토크쇼 같은 걸 진행하는 걸로 시작하지 않던가. 리디아 타르의 기나긴 약력들과 업적을 들으며, '아, 뭔진 몰라도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기 마련이다.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지휘자.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에서도 예술계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무료 스트리밍을 기획한 사람. 미국 대중문화계의 그랜드슬램인 'EGOT(에미, 그래미, 오스카, 토니)' 를 달성한 열몇 명의 인물 중 한 명. 심지어 얼굴은 케이트 블란쳇이다. 이 정도의 사람이라면, 심지어 성공한 여성이라면, 무언가 깨어 있을 것 같다. 옳을 것 같다. 무심코 이런 편견과 착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그 인터뷰에서, 예술계 속 여성혐오에 대해 질문하는 인터뷰어에게 "마에스트로를 마에스트라라고 대체하는 꼴이라니.", "예전에야 여성혐오가 심해 여성 지휘자들이 인정받지 못했지만 지금은상황이 좀 낫다." 같은 소리를 하는 리디아 타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자신의 능력에 제법 자신이 있는 탈규범적인 당당한 여성?
'유색인종 팬젠더' 아이덴티티를 내세우는 학생이 '바흐의 삶은 여성혐오적이라 내겐 받아들이기 힘들다'라고 주장하자 타르는 학생의 협소한 가치관을 비웃는다. 예술은 인종이나 성별과 관계없는 것이라며, 그 근거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강조하면서. 결국 학생이 "You are BITCH."라고 외치며 줄리아드 강연 장면은 끝이 난다. 여성혐오적인 예술가의 삶을 싫어하던 학생이 'bitch'라는 여성혐오의 결정체같은 단어를 내뱉고 사라진다니. 참 모순적인 일이다. 리디아 타르의 승리로 끝난 이 싸움에서 우리는 또 속고 만다. '그래, 예술과 예술가는 분리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예술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는 건 정당하지 않아. 백인 동성애자라는 마이너리티를 가진 사람도 저렇게 말하잖아? 게다가 저 학생도 깨어있는 척만 할 뿐 결국 여성혐오적인 가치관을 버리지 못했네. 교수한테 bitch라고 외치고 나가버리잖아!'
 
다음 장면은 오케스트라다. 지휘자의 무대이며 리디아 타르가 살아 숨쉬는 작업장. 그러나 그 장면에서 악장을 맡은 사람은 리디아 타르의 배우자이고, 부지휘자는 리디아 타르의 조수로 내정되어 있었으며, 자신과 오묘한 기류를 형성한 첼로 연주자를 위해 업계의 관행을 깨고 오디션을 강행한다(관행대로 당연히 자신일 것이라 생각한 첼리스트의 동요한 얼굴이 감상 포인트다.). 그렇다. 오케스트라의 권력인 '지휘자', '부지휘자', '제1 바이올린-콘서트 마스터', '솔로 연주자'가 전부, 리디아 타르의 주변인이거나 그렇게 될 뻔 했다. 여기에 '블라인드 오디션'이란 눈속임으로 공정함을 강조하려 하지만, 리디아 타르는 연주를 끝마치고 나가는 사람의 신발을 본다. 블라인드 오디션에서 미처 가려지지 않은 부분이다.
 
리디아 타르는 집에서 작곡을 한다. 옆집의 소음과 극성맞은 이웃주민은 작곡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리디아 타르는 이런 스트레스 속에서 예민해지곤 한다. 이는 우리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애이다. 하지만 어떤가? 이웃 주민의 친척이 집을 팔고자 한다며 리디아 타르에게 '집 팔 때는 조용히 해 달라' 라고 말하고 가지 않던가? 리디아 타르의 '음악'은 이웃 주민에게 '소음'인 것이다. 리디아 타르에게 이웃집이 시끄럽게 구는 게 들린다면 당연히 옆집도 리디아 타르의 피아노 소리를 들을 텐데. 철저하게 리디아 타르의 시선으로 진행되었던 영화는 이 부분을 배제하다가 그제야 이웃의 시선으로 그녀를 비춘다. 리디아 타르가 끔찍히도 싫어하고 혐오하던, 그 소음 말이다.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던 리디아 타르에 대한 관객들의 평가는 이곳에서 실이 뚝 끊긴 것처럼 크나큰 변동을 맞는다. 리디아 타르는 본인의 직업이 너무 소중해서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걸 마다하지 않는 이였다. 심지어 그 지적에 불쾌함을 숨기지 않을 정도로 '이웃 주민'과 '자신, 리디아 타르'에 급을 나눈다. 되려 시끄럽게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는 리디아 타르의 기저에는 '감히 너희 같은 돈에 눈이 먼 교양도 없는 이들이 내게 뭐라고 하느냐' 라는 문장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추문이 퍼진 이후 SNS 게시글들을 확인할 때도, 배우자와 갈라선 뒤 '우리 관계가 단순 거래야?' 하고 비난할 때도, 아시아 변두리 국가에서 마사지를 받을 때도 유지된다. 
 
마사지 샵에서 암시되는 매춘 행위에 그녀는 필사적으로 도망쳐 나와 토를 하고, 새로운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코믹콘에서 서브컬쳐 OST를 연주하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난다.
 
백인 사회에서 인정받은 리디아 타르는 모든 명성을 잃고 아시아로 도망쳐 온다.
성공한 여성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리디아 타르는 여성을 사고파는 행위에 구역감을 느낀다.
마에스트로는 시간을 지배한다고 의기양양하던 리디아 타르는 헤드셋을 쓰고 영상에 맞춰 지휘를 한다.
클래식 음악-고급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악단을 이끌던 리디아 타르는 코믹콘에서 게임 OST-서브컬쳐 악단을 이끌게 된다.
하나같이 리디아 타르가 무시하던 것이다. 평을 찾아보니 엔딩의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나는 이 엔딩이야말로 리디아 타르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리디아 타르는 그런 인간이니까. 무심코 그런 것들을 하찮다고 여기는 추악한 사람이니까. 엔딩을 보며 관객이 느끼는 불쾌함과 추악함이야말로 리디아 타르의 본성이며, 영화 'TAR 타르'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이 영화의 주인공은 케이트 블란쳇이 맡을 수밖에 없었다. 케이트 블란쳇의 그간 행보를 생각해 보면 이렇게 부도덕하고 혐오적 시선을 가진 여성 인물을 연기한다는 게 의아할 것이다. 케이트 블란쳇은 이 의아함을 잡아먹을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펼치고, 리디아 타르를 완벽하게 세상에 내놓았다. 인간 케이트 블란쳇과 캐릭터 리디아 타르의 대비를 통해, 우리는 이것이 훌륭한 미러링 영화라는 점을 깨닫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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